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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교환되는 글쓰기, 그 예술성을 위하여 -글쓰기의 최전선

by 행복 공장장 2023.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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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최전선  
 글 쓰는 것과  배우는 것을   즐길 계절이 왔다. '은유'라는 필명을 쓰는 이의 '글쓰기 최전선'을 통하여 생각하는 것, 살아가는 것 , 글 쓰는 것을 다시 배운다. 성찰 없이 달려온 계절을 뒤로하고 가을은 생각하는 계절, 삶의 이유를 밝히는 계절이다. 글쓰기를 통하여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부품화된 기계로 살아온 시간들의 존재의 억압을 풀어내고 존재의 펼침과 조약 해진 감정의 결들을 펼쳐 우주의 넓은 품으로 돌아갈 시간인 것이다. 삶은 언제나 최전선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재난과 사건, 사고의 총탄과 폭탄이 날아다는 세상사 속에서 , 낮은 포복으로 또는 외줄 타기 하듯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 최전선에서 글과 읽기를 삶의 무기로 삼아  삶의 최전선에서 살아남을 생존의 기술을 전수하는 글쟁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은유'이다. 

 
삶의 진지전-삶의 옹호자 되기 
최전선의 전투는 '진지' 전투에서 승패가 결정난다.전투병들은 '적의 진지'를 얼마나  차지하느냐에 따라 전투의 승부가 결정 나게 된다. 생존을 건 전장의 최전선이다. 삶은 언제나 최전선이다. 생존을 위한 돈벌이를 위해 , 자본주의 사회 개미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아니면,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생존의 최전선으로 출전해야 한다. 오늘의 전우가 내일의 적이 되는 웃지 못할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가족과 삶을 지켜낼 수 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의 안간힘이 다. '은유'는 그 안간힘을 글쓰기의 첨단무기로  탑재하게 한다. 삶을 지키고 , 그 삶이 예술성으로 증명하는 글쓰기가 되는 존재의 펼침이 가능한 글쓰기, 그 전투력을 갖게 한다. 세월호, 이태원참사. 기후변화와 위기에 따른 불난리와 물난리의 재앙과 재난이 일상화된 오늘, 삶의 최전선에 투입된 각개 병으로서의 인간의 삶은 깊이 슬퍼할 시간도, 아파할 시간도 없이 , 각자의 전투, 삶의 최선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잠시의 물러섬과 돌아섬으로  무기를 수리하고 재점검하여 , 전장의 최전선, 삶의 최전선, 글의 최전선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은유의 화두처럼 ' 이것이 최선인가, 이것이 전부인 삶인가'를 질문하며, 왜 사는가'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살아가고 , 글을 쓴다. 거대한 자본의 힘에 휩쓸려 살지 않기 위해, 그 불안에 떠밀려 살아가는 삶을 멈추고, 본질과, 적들을 직시하여, 생존의 전투에서 살아남는 인생의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 삶은 언제나 최전선이다. 

감응- 고통과 재난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맛 내기 
글쓰기의 최전선는 은유가 -'수유너머 R'에서 행한 글쓰기 강의를 통하여 수강자들과 공동작업을 통하여 산출할 열매이다. 그래서 책은 현실감 있게  읽힌다. 사람이 보이고 , 표정과 풍경이 보이고 말과 글의 풍경들이 있는 그대로 다 보인다.
'감응하는 육체만들기' 책은 글쓰기를 세상과 감응하는 육체 만들기라는 말로 정의한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엇인가 의아했다. 책을 읽고 나니 , 그 말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던, 공감하는 책 읽기, 공감하는 글쓰기로 이해하게 되었다. 
책에는 글쓰기를 위한 시와 문학, 철학, 그리고 , 세상과 인간 읽기를 알려준다. 시인의 영감과 문학과 철학서의 사상의 깊이, 세상과 인간의 깊이,그  깊은 심연 도달하는 길과 그 심연에서 다시 걸어 나와 삶의 현실에서 철학과 사상의 우물, 영감에서 길러낸 통찰을 갖고 삶의 현장에서 글과 삶을 갖고 살맛 나게 풀어나가는 길을 안내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시와 문학,철학을 읽고 우리는 감동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시와 문화, 철학의 세계에  들어가 감응하여, 삶의 육체로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이 읽고 , 더 많이 생각하고, 세상의 고난과 실패, 고통, 재난이 일상이 된 현실에서 삶과 인생에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 순도 높은  삶의 결정체를 얻어내는 생각하기 와 글쓰기를 생산해야 한다. 
'글쓰기 최전선'은 그 자료를 얻기 위한  문학과 철학서 읽기 안내서 읽기이다. 읽기에 끝나지 않고,  생각하기와 글과 문장을 삶으로 살아내기 , 글의 근육과 삶의 근육으로 키워내는 법을 알려준다.
니체, 최수영, 김현, 이성복, 기형도. 최승자.. '해리포터'의 조앤. 롤랑, '동물농장'의 조지오엘, 고통의 세상에서 길러낸, 그들의 생명수와 같은 문학과 철학의 잠언들은 깊이의 심연에서 연결된 우리로 하여금 감응하게 하고 , 세상을 살맛 나게 하는 비법들을 전수하고 있다.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 에는 그러한 인간의 표정과 말과 글의 표정이 생동감 있게 살아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샤르트르의 명제는 영원한 화두이자, 말과 글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존재와 삶의 이유를 돌아보게 한다. 오늘날의 세상은 말과 글이 오염되어가고 있다. 지구촌이 인간욕망의 결과로 얻은 재난과 고난, 고통이 일상화되듯, 삶에도 인간의 글과 언어를 끊임없이 오염시키는 자본주의의 어둠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존해야 한다. 우리는 생각하고 말하고 , 글을 쓴다. 지식정보화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인식하든 안 하든 , 순도 높은 글과 말은 화폐로 교환되는 세상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기술진보로 얻는 인공지능과 협력한다는 구실로 , 창조와 영감의 영역인 글쓰기의 주체로서의 인간다움의 자리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우울한 세상의 표정이다.
글이 또 길어진다. '글쓰기 최전선'은 글과 언어, 생각의 기술을 '절차탁마' 하는 유용한 도구이다. 그 절차탁마의 결과물은 어쩜,  자본주의 사회 화폐와의 유용한 교환 수단이 될 것이다. 조지오엘은 ' 정치를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 글을 썼다고 한다. 살아 가는 일은 각양의 모양과 표정이 있는 세상이다. 어떤 이는 글과 문학을 통하여 정신과 영혼의 승화를 모색하지만, 또 어떤이는 생활을 위해 글을 쓴다.
 각종서류, 계약문서, 법률문서, 마케팅의 문장, 크리에디터의 카피라이터 문장, 블로그의 글쓰기, 모든 글들은 삶의 최전선이다. 모든 글과 삶은  삶과 글의  최전선에서 '절차탁마'  그 고통의 시간을 통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화폐, 그 가치와 교환된다.
그 교환이 자본주의 오염된 언어를   넘어  예술로 승화되는 말과 삶과 글이 되기 위하여 , ' 글쓰기의 최전선'은 삶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도 그 말과 삶과 글을 위해 안간힘을 써본다.   모두 그 길에서 예술로 승화되는 삶과 감응하기를,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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