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는 인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세가지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첫번째 사건은 니콜라우스 코페니쿠스가 지동설을 제창하는 바람에 지구와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된 사실이고 두번째는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인간이 다른 피조물을 넘어서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서 나온 하나의 동물이라는 사실이고, 마지막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인데 그분석에 따르면 인간이 예술을 창조하고 영토를 정복하며, 과학적 발명과 발견을 하고,철학체계를 세우거나 정치제도를 만드는 것은 자아를 초월하고자 하는 초자아의 고상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은 그저 성적인 파트너를 유혹하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리어 이 모든것을 한다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위대한 소설인 것은 인류에게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를 다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어냄으로 인류에게 자존심을 상하게 한 사건들을 넘어서는,참으로 인류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사건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되기를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로 담백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채식주의자‘는 일상의 트랙을 벗어나 부유하는 인간,영혜를 중심으로 그의 남편과 언니인 인혜, 인혜의 남편이자,금기시 된 성적파트너가 된 영혜의 형부,영혜 주변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1인칭관찰자 싯점‘으로 소설을 구성하고 있다.
주인공 영혜가 특별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채식주의자로 퇴행하는 인간으로 진화해 가는 이야기의 발단은 그의 꿈이다.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꿈과 무의식,자아와 초자아,성과 억압 이라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통하여 인간정신병의 출발지가 된 억압과 무의식, 그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영혜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영혜의 무의식, 꿈, 억압된 자아를 꺼집어 내 배경에는 가족이 존재한다.소설에 주로 등장하지 않으나, 영혜가 어느 날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게 하는 원초적 무의식의 뿌리에는 권위상징인 아버지의 폭력과 학대가 있다.영혜의 꿈은 현실에 내재된 육식이라는 기호가 상징하는 폭력과 제도, 일상의 억압을 모두 거부한다. 그녀의 억압된 꿈은 ‘채식주의‘로 상징되는 기호를 통하여 일상에 내재된 욕망을 해체하려는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인 것이다.
일상의 억압에 순응하는 남편,영혜의 억압된 꿈과 무의식 만큼, 욕망과 무의식을 억압하고 살던, 인혜의 남편이자 영혜의 형부는 예술이라는 꿈의 실현,욕망의 분출을 위해 ‘몽고반점’을 태생적으로 가진 인간, 영혜의 퇴행적 진화와 발맞추어 금기가 된 근친상간의 욕구를 발설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인간의 비극적 퇴행과 억압을 견뎌내는 이는 영혜의 언니 인혜이다.
한강작가는 연작소설의 마지막인 ‘나무불꽃’에서는 시간과 의식, ‘만일 ~ 하지 않았다면 , 막을 수 있었다면‘의 가정법의 대사를 자주 사용한다. 현실을 견디는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의 표출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종극을 향해 치닫는 영혜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눈 빛을 향하여, ‘ 너 미친 것 맞니, 너 미친거지..‘
하는 의미없어 보이는 독백은 오래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소설 마지막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그녀는 고개를 수그린다 무언가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영혜의 귓바퀴에 입을 바싹 대고 한마디씩 말을 잇는다
꿈속에선,꿈이 전부인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 아니라는 걸 알지 .. 그러니까, 언제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
라는 문장으로 독자에게 깊고 긴 질문을 던지며 소설을 마무리 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진짜로 긴 꿈을 꾸고 났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여러가지 한강작가와 채식주의자에 대한 어이없는 논쟁을 볼때 마다,
어이없는 긴 한 숨이 나온다.
여러해석을 하고 싶으나,줄여보자면 한강의 문체와 문장, 그의 책은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대로 ‘현대문명의 혁신을 이끌어 낸 소설’이 맞다는 것이다.
그녀의 소설속 문체들의 묘사와 인간 감정선을 다루는 솜씨는 보통이 아니다,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그녀의 소설을 읽어본 이들은 다 알게 된다.
그러니 한강작가의 소설이 혐오스런 성을 묘사했다는 어리석은 판단과 비평들은
멈추어주었으면 한다.
한강의 소설은 아프고 치열하게 아름다운 소설이다.
한강의 소설은 읽는 이들에게 상상하지 못한
낯선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글이 길었다. .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
그렇게 자기만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사람
그가 바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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